어제는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퇴직동기 모임날이었습니다.
봄이 온 만큼 야외 활동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 자락길을 한 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4명의 동기 중에서 현역으로 복귀한 1명을 제외한 3명의 아저씨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하필 저희들이 만난 오후 2시부터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비가 내리는 안산( 鞍山 ) 자락길은 등반객들이 거의 없어서
3명의 아저씨들이 한 달 동안 밀봉해 두었던 수다를 풀어내기에 적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등반객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 이 코스에 익숙한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이어서
산자락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그런 느낌이 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차분한 봄비는 도심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안산( 鞍山 ) 자락을
차별도 없이 구분도 없이 골고루 적셨습니다.
성미 급한 진달래와 개나리는 이미 화창하게 피어 있었고
처음 마주한 노란 초롱꽃도 그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이 노란 초롱꽃의 이름은 "히어리",
그냥 외우기 쉽게 "힐러리"로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이르게 피는 꽃들을 보며 불현듯 T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TS 엘리엇 시절에 "잠든 뿌리를 깨우던 4월의 봄비"는
이제 지구온난화로 3월에 내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만큼 우리 정서도 짧은 겨울과 급한 이별을 하고 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오늘 이렇게 안산 자락을 편한 마음으로 걷고 있는
은퇴 3총사의 마음에 굳이 " 3월은 잔인한 달"일 필요는 없을 듯 싶습니다.
은퇴가 가져다주는 여유 속에서
마치 안산 자락길처럼 우리 앞에 펼쳐있는 그 길을 음미하며
한걸음 한걸은 걸어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꽃이 있으면 꽃을 바라보면서....
3월 마지막주 월요일, 서울 서대문 안산 자락길은 또 하나의 추억으로 쌓였습니다.
감사합니다.
PS : 챗 GPT에게 "황무지"의 영어 원본을 적어달라고 했더니 마치 코딩문처럼 보여주네요.
재미있는 세상입니다. TS 엘리엇은 이런 세상을 예상했을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