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소랜 은퇴 연구소


제목 : 가장 (家長)

 

6월은 보훈의 달이라지만,
내 일상은 그렇게 무거운 주제를 부둥켜안지 못해도
보험을 들 수 없는 수많은 미래의 근심과
당뇨병같이 고단한 하루하루의 관리와
아직 내려놓지 못한 욕심과 책임들의 가볍잖은 무게로
때론 지치고,
때로는 허둥거린다.

이  6월에는
빈방으로 남겨 두었던 안방에
부모님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들어 오셨고
멀리 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의 계좌에
기한을 맞추어 어김없이 송금을 해야 했고
좋은 뉴스보다는 나쁜 뉴스들로 채워진
그다지 다를 것이 없는 한 달의 세상을 목격해야 했다.

6월이 지나기 전에
칼로 물 베기란 걸 알면서도
아내와 나는 한 차례의 다툼을 통해
서로의 스트레스를 주고받음으로
또 다른 한 달에 적응하기 위한 숨 고르기를 끝내고
앙코르 공연 같은 다정한 화해를 즐겼다.

아내의 새벽 기도가 더 길어진
이  6월의 끝자락에
나만 한 크기의 체념과 희망을 품은 듯한 수많은 가장(家長)들과
이상한 경쟁심을 느끼면서
늦은 퇴근 전철 안에 적당한 간격으로 앉아
오늘 하루 분량의 주름을
얼굴로 조각하고 있다.



8년 전쯤에 쓴 글입니다.

당시는 주 52시간제가 도입되기 전이었고 회사 업무도 무척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전철 막차 시간을 체크해야 할 정도였으니 최근 칼퇴근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때였습니다.
업무뿐만 아니라 가장의 무게 또한 컸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절들도 계절이 바뀌듯, 어느덧 추억 속의 일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편안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퇴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참 좋습니다.

그때 하루하루의 무게로 빗어진 주름들이 지금 제 얼굴이 되었겠지요.
그래서 오늘 제 모습은 떳떳하고 자랑스럽고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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