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무라카미 류의 '55세부터 헬로라이프'를 소개드렸는데 오늘은 이 작가의 대표작인 "69 Sixty nine"을 소개드려 봅니다.
제목의 "69, Sixty Nine"는 1969년을 가리킵니다.
이 소설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1969년, 도쿄대학은 입시를 중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대~80대 초반에 학생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었는데, 일본은 이보다 앞선 1960년 대에 학생운동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학생운동이 격렬해서, 소설의 첫 줄처럼 동경대는 1969년에 학부생을 받지 않아 1969학번이 없다고 하니 얼마나 학생운동이 심각했는지 짐작이 되는 대목입니다.
이 소설은 이같이 학생운동이 격렬했던 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무라카미 류의 자전적 이야기를 1인칭 화자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3이었던 주인공 (야자키 겐스케)이 꾸미는 2개의 사건_ 데모용 바리케이트 설치와 페스티벌을 벌이는 이야기_이 메인 스토리입니다.
한마디로 읽는 재미가 뛰어난 소설입니다..
우리 50~60대 중장년에게 학생운동은 암울하고 살벌했던 당시 상황에 걸맞은 무겁고 음침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짐작건대 일본에서 학생운동을 겪었던 세대들의 추억도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이 학생운동을 경쾌하고 가벼운 읽을거리로 풀어냅니다.
주인공이 기획하고 벌이는 두 개의 사건 모두, 그 배경은 시대적 소명이나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라 실상은 마츠이 가즈코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었음을 부끄럼없이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이런 가볍고 코믹스러운 분위기가 문장에서도 자주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아래와 같은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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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해산당했고 나는 교무실로 불려갔다. 생활주임 앞에 꿇어앉았고, 내 주위를 열 명이 넘는 선생들이 둘러샀다. 나는 천정에 거꾸로 매달려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반복했고 죽도록 얼굴을 맞고 등에 인두질을 당하고, 가스버너 불로 허벅지에 화상을 입었다. 라고 하면 새빨간 거짓말이고, 슬리퍼로 발바닥을 두들겨 맞으면서 오래도록 설교를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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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고 하면 거짓말이고, 사실은 ~했다."는 표현이 잊을만하면 한 번씩 반복되는데 신선하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이 표현이 언제쯤 다시 나올까 하는 기대를 갖고 소설을 읽어나가게 되더군요.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내는 무라카미 류의 작가적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양희은의 아침이슬이나 상록수를 배경음악으로 틀기보다는 90년대 중반의 경쾌한 댄스곡들을 틀어놓고 맥주 한잔 들이키며 서너 시간 읽어보면 좋은 소설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