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자주 들리는 10월도 어느새 끝자락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시월엔 곱게 물든 단풍잎 한 장도 너무 흔해 크게 특별할 것이 없지만 훗날엔 반드시 그리워지듯이, 은퇴 생활자의 평범한 하루도 언젠가는 그리움이 될 것 같아서 글로 스케치해 담아두기로 했습니다.
오전에 휴대폰에 문자 한 개가 도착했습니다.
연금이 입금되었다는 내용의 안내 문자입니다.
핸드폰으로 건네받는 알림 가운데 가장 반갑고 든든한 문자이지요.
마치 월급날에 그랬던 것처럼 이런 날은 특별한 이벤트를 해야겠죠.
아내와 같이 시내에 나가서 짜장면을 먹기로 했습니다.^^,
시내에 나가는 김에 두 명 모두 이발을 하기로 했습니다.
내일 지인분의 장인 구순 잔치에 초대를 받아 조금 단정하게 꾸밀 필요가 있어서입니다.
아내와 제가 다니는 미용실이 달라 각자 따로 머리를 손질하고 1시경에 만나 점심을 먹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10년 넘게 다닌 단골 미용실은 늘 편안합니다.
"평상시와 똑같이 해주세요"라고 말씀드리고 눈을 감고 있으면 다 알아서 깎아주십니다.
미용실에 대기 손님이 없어서 이발이 일찍 끝났습니다.
근처 카페로 가서 아내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좋아하는 예가체프 한 잔을 시키고 아이패드와 스케치북을 꺼내 테이블 위에 세팅을 했습니다.
몇 년 전에 관광을 갔을 때 찍어 두었던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 사진을 올려놓고 예가체프의 풍부한 산미를 음미하며 펜으로 한 줄 한줄 공간을 채워 나갑니다. 저는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순간이 참 좋습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나머지 부분을 마저 그리고 옅은 색조로 채색을 마쳤습니다.
이 그림은 이번에 사용한 스케치북의 마지막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가끔 들리는 중국집에서 간짜장과 짬뽕으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이 두 요리는 참 신기한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바꿔주기 때문이죠.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는 그렇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 가을 분위기에 빠져보기 위해 가을철 임시 개방( 10/21일 ~11/15일 )을 한 서울대 수목원으로 산보를 가기로 했습니다.
관악산 단풍은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안양 예술공원 초입에는 단풍이 제대로 들었더군요.
평일인데도 많은 분들이 나와 서서히 무르익는 가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산보 나오면 항상 손을 잡고 걷습니다.
서로 손을 잡고 낙엽을 밟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서로의 입에서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흘러나오고 있더군요.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이 너무나 아름답게 들리는 오후입니다.
소박한 한나절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슈퍼에 들러 두부 한 모를 사 왔습니다.
오늘 저녁은 제가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몇 군데 요리강좌를 듣고 나서는 한 끼 정도 준비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
이렇게 윤기가 흐르게 밥을 짓는 것도 이젠 쉬운 일이죠...
저녁의 메인 메뉴는 얼큰한 두부 스팸 찌개...
갓 지은 밥에 비벼 먹으니 밥도둑이 따로 없습니다. 아내의 맛있다는 극찬이 쏟아집니다.
제가 요리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다소 과장된 리액션이고 칭찬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녁에는 두 시간 정도 온라인 강좌를 들으며 자기계발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한 시간 전에는 아내와 함께 성경통독과 기도 시간을 갖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구약과 신약을 한번 읽기로 했는데 지금 페이스라면 큰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집에서 반경 3Km 이내에서 지낸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한 하루였지만 저희 부부에게는 시월의 멋진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