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소랜 은퇴 연구소


퇴직 다음 해에 바로 떠났던 제주에서 한 달 살기.

제주에서 한 달 살기는 일반적인 2~3일, 혹은 일주일 정도의 짧은 제주 여행과 많이 달랐습니다.

 

짧은 제주 여행은 주로 한라산 등반이나 제주 주요 명소를 둘러보는 여행이었다면 한 달 살기는 그냥 현지인처럼 편안하고 여유롭게 제주를 즐기자는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주도는 관광지인 탓에 한 달 살기는 30번의 짧은 여행이 될 수밖에 없었던 서 같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아닌 한적한 곳으로 행선지를 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제주 방문과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파리 한 달 살기도 제주의 그것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루에 한 두 곳 관광지를 정해서 그곳에서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며 파리를 즐기는 것이 우리 부부가 생각하고 있는 이번 여행의 컨셉입니다.

 

파리 4일 차인 오늘이 딱 그랬습니다.

 


 

 

어제 둘째 아들 녀석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이전에 자기가 다녔던 학교가 보고 싶다고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6구 하넬라(Ranelagh) 거리로 가서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당시 애들을 등교시킨 아줌마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던 빵가게에 들렀습니다.

애들이 다녔던 파리 국제학교 (ISP)

 

이 집 빵이 유독 맛있었다는 아내의 기억을 되뇌며, 점심으로 먹을 치킨-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사서 배낭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프랑스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발자크는 1800년 대 소설가인데 20년 동안 무려 97권의 책을 쓴 괴짜 천재로, 삶의 여정에서도 사업실패, 빚, 도박, 식탐 등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 분입니다.

 

그분이 사시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는데, 입장료는 놀랍게도 무료,,,

멀리 에펠탑이 보이는 메종 드 발자크

 

이 박물관의 매력은 바로 정원입니이다.  아담하지만 잘 가꿔진 정원에서 의자에 앉거나 잔디밭에 누워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짧은 일정으로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의 여정에는 포함되지 않는 장소이므로 여러 가지 매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지 않아 몇 시간 앉아 있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곳입니다.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현지인들

 

정원의 모습

 

카페도 있어서 커피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카페 알롱제, 아내는 카페 라테를 시켜 마시며 두어 시간 수다를 떨었더니 허기가 져 구입해 간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습니다.

딱 우리 부부가 원했던 모습으로 파리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두 번 이용했을 정도로 정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 발자크의 흔적을 둘러봤습니다.

발자크 흉상, 어딘지 모르게 괴짜의 모습이 보인다.

 

소설을 쓰던 서재

 

창가에 비친 정원은 이미 가을이다.

 

발자크와 관련되어서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사업 실패로 진 빚을 갚기 위해 집필에 몰두했는데, 독한 터키식 커피를 하루에 50잔 가까이 마시며 15시간씩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생 마신 커피가 3~5만 잔이 된다고 하고 사망원인도 카페인 중독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가 살던 이 집은 출구가 앞뒤로 양 쪽에 있는데 빚쟁이들이 찾아오면 반대편 출구로 도망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도 자주 회자되는 에피소드입니다.

 

발자크의 '인간극 (La Comédie humaine)'이라는 작품에는 등장인물이 무려 2,470명이라고 합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등장인물이 800여 명으로 알려져 있으니 그 방대한 스케일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의 한 방에서는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관계도가 빼곡히 표시된 도표도 볼 수 있습니다.

인간극 등장인물 관계도

 

이렇게 박물관 내부 관람을 마치고 방명록에

'아내와 결혼 35주년 기념으로 파리에서 35일을 지내고 있어요.  정원에서 한나절 너무나 즐거웠어요.'라고 인사말을 적고 나왔습니다.

방명록 인사말

 

박물관을 나와서 길 아래쪽으로 돌아 베르통 거리 (Rue Berton)로 내려가면, 발자크 집의 반대편 출구를 볼 수 있고 연이어 아주 독특한 골목과 마주치게 됩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의 돌담입니다. 이전에 포도밭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이용하던 길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특이한 분위기입니다. 어떤 유명한 시인이 파리에서 가장 독특한 골목이라고 표현했다고 하더군요.

배르통 거리의 돌담

 

이 길을 걸어 나오면 조용한 파시 공원을 만나게 되고 연이어 세느강에 도착하게 됩니다. 바로 코 앞에 에펠탑이 보입니다.

파리에서는 에펠탑과 1일 1만남은 자연스럽습니다..^^

조용하고 평온한 파시(Passy) 공원

 

비르하켐 다리(Pont de Bir-Hakeim)에서 바라본 에펠탑

 

화창한 날씨만큼 만족스러웠던 오늘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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