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화장실 이용에 있어 굉장히 야박합니다.
우리는 어딜 가나 깨끗한 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죠. 이런 데서 살다가 유럽 여행을 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돈을 지불해야 하는 방식이어서 큰 불편이 따릅니다.
게다가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마저도 남녀공용이거나 협소해서 화장실 측면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뒤처져 있는 것은 분명하죠.
올해 파리 올림픽을 치르면서 파리도 이곳저곳에 공공화장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관련 앱도 만들어서 화장실 위치를 스마트폰에서 찾을 수 있도록 나름 노력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숫자도 부족한데다가, 한 사람이 이용하고 나오면 자동적으로 바닥을 세척을 하고 바람으로 말리데 3~4분은 걸리는 효율성이 많이 떨어진 시스템이어서 파리의 화장실을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습니다.
이 같은 화장실 문제는 사소해 보이기는 하지만, 전립선이 약해진 중장년에게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이번 여행 중에 2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반드시 화장실을 다녀온다.
-카페나 식당에 가면 무조건 화장실을 갔다가 나온다.
이 원칙을 지키면서 조심한 덕분에 크게 난처한 일을 겪지 않고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었지만, 화장실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에피소드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3개 정도를 소개해 봅니다.
에피소드 (1)
이전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카페 체인점 'Pret A Manger'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점심시간에 이곳에 들러 점심 식사를 마치고 소변을 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고 화장실을 갔더니 전자자물쇠가 설치된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종업원에게 물어봤더니 영수증에 Toilet Number가 적혀 있으니 그것을 누르고 들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2층으로 올라와 번호를 눌렀는데 자물쇠가 열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번 시도를 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살짝 당황하고 있는데 제 또래로 보이는 미국인이 와서 화장실 문을 열려고 버턴을 눌렀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 양반 미국인답게 "글로벌 시티인 파리에서 화장실이 이렇게 불편하냐며...." 장황스럽게 불평을 쏟아내더군요.
이를 옆에서 보고 싶던 젊은 프랑스 친구가 "괜찮으면 제가 한번 해봐도 되겠냐"라고 정중히 양해를 구하면서 Toilet Number가 적힌 제 영수증을 받아 들고 눌렀는데 문이 열렸습니다.
알고 보니 비밀번호 가운데 알파벳 "C"를 "0"으로 잘못 읽고 눌렀던 것이었습니다.
깨알같이 쓰진 비밀번호가 노안이 있는 저와 그 미국인이 읽기에는 너무 작은 글씨였습니다.
전립선이 약한 것도 서러운데, 노안이 있으면 들어가기 힘든 파리 화장실에서의 해프닝이었습니다.^^
에피소드 (2)
파리 속의 신도시라고 할 수 있는 라데팡스에 갔던 날이었습니다.
파리와는 완전히 다른 현대식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라데팡스에는 쇼핑몰도 현대식이고 규모도 매우 큽니다.
이곳저곳 가게를 둘러보다가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설마 했는데 이런 대형 쇼핑몰의 화장실에서도 1유로 입장료를 받고 있더군요.
마치 지하철 출입구 같은 개폐식 출구에 카드를 갖다 대고 결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시설은 현대식이라 좋았지만 참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관리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한 처자가 출입문 한쪽을 붙잡고 문이 닫히지 않게 해 놓고, 화장실에 오는 사람들을 모두 프리패스하게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표정이 웃겼습니다. 마치 '자신은 옳은 일을 다'고 있다는 로빈훗과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에피소드 (3)
루브르 박물관에서 겪었던 일입니다.
관람을 마치고 입구 측 로비의 화장실을 찾았는데 워낙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여자 화장실 앞에는 긴 줄이 서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남자에 비해서 여자들의 화장실 이용시간이 긴 만큼,,, 사람들이 많은 미술관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남자 화장실 입구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데,,, 입구 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더니 많은 여성분들이 갑자기 남자 화장실로 몰려드는 것이었습니다. 급하신 분들이 참지 못하고 남자 화장실로 단체 진입을 한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독일의 한 지방에 출장을 갔다가 작은 동네라 특별히 할 것이 없어서, 동행했던 현지 동료와 같이 피로를 풀 겸 호텔 사우나를 갔었습니다.
처음 들어갔을 때는 우리 밖에 없어 느긋한 마음으로 사우나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떠들썩하더니 한 무리의 중년 여성들이 사우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독일 사우나 중에는 남녀공용이 많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썬텐으로 건강미가 넘치는 덩치 큰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기억이 파리 남자화장실로 진입한 여자분들을 보면서 재미있게 떠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