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대통령 선거일이라 아침 일찍 투표장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아내와 하루를 여유롭게 보내기로 하고, 점심 이후엔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선택한 영화는 미션 임파서블의 마지막 시리즈인 파이널 레코닝(The Final Reckoning),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이자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답게, 분량도 꽤 길었습니다.
초반부는 지난 시리즈들과의 연결고리를 풀어내느라 다소 복잡하고 어수선했지만,
후반 30분—해저 잠수함에서 시작되는 액션 장면은 그런 지루함을 단숨에 날려줄 만큼 강렬했습니다.
이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 구조는 사실 아주 단순합니다.
세상의 중요한 일은, 두 개의 상반된 요소, 즉 양과 음이 만나야 비로소 완성되다는 철학이죠.
예컨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듯,
이 영화의 핵심도 결국 두 개의 존재가 만나야만 지구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영화 속 위협의 실체는 '엔터티'라 불리는 강력한 인공지능(AI)입니다.
이 엔터티는 스스로 판단하고, 세상의 모든 시스템에 침투하며,
인간의 논리를 뛰어넘는 사고를 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미 수많은 정보를 흡수해 인간보다 더 똑똑해졌고, 이를 통제하지 못하면 지구 전체가 위협받게 되는 설정이죠.
이 인공지능을 무력화하기 위한 열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엔터티의 ‘자아’에 해당하는 소스코드 ‘포드코바(Fodkova)’,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자아를 왜곡시키고 통제를 붕괴시키는 바이러스 ‘포이즌 필(Poison Pill)입니다.
두 개가 함께 있어야만 엔터티를 끌어내릴 수 있는 구조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요소의 물리적 위치입니다.
포드코바는 해저 깊숙한 곳에 침몰한 잠수함 안에 있고,
포이즌 필은 하늘을 날고 있는 쌍엽기에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이단 헌트(톰 크루즈)는 하늘과 바다를 넘나들며
이 두 개를 하나로 결합하기 위한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미션 임파셔블의 화려한 액션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되는 거죠..^^
그런데 영화를 보며 흥미를 느낀 것은 ‘포이슨 필(Poison Pill)’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영화적 장치 정도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경영학에서 유래한 실제 전략 용어더군요.
경영 용어로써의 포이즌 필(Poison Pill)은
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위협에 처했을 때 사용하는 방어 전략입니다.
만약 외부 세력이 기업을 인수하려고 일정 지분 이상을 사들이면,
기존 주주들에게 헐값에 추가 주식을 매입할 권리를 부여해
외부 세력의 지분율을 희석시키고 인수 비용을 급격히 높이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를 먹으려 한다면 독까지 함께 삼켜라”는 경고인 셈이죠.
그래서 ‘Poison Pill(독약 알약)’이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이 전략의 대표적인 실제 사례로는 넷플릭스와 칼 아이칸(Carl Icahn)의 대결이 있습니다.
2012년, 헤지펀드 거물 칼 아이칸은 넷플릭스의 주식을 대거 매입하며 경영권 장악 시도에 나섭니다.
이에 넷플릭스 이사회는 즉각 포이즌 필 전략을 도입합니다.
어떤 주주가 1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면, 기
존 주주들이 할인된 가격으로 주식을 추가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주주 권리 플랜’을 발동시킨 것이죠.
결과적으로 아이칸은 더 이상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했고,
넷플릭스는 경영권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 포이즌 필은 인공지능(AI)의 자율성을 통제하기 위한 바이러스로,
현실의 경영 전략과 유사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핵심 자산이나 자율성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요즘 인공지능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언젠가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AI)이
세상의 주도권을 쥐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죠.
이 영화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인공지능의 위협에 맞설 적절한 ‘포이즌 필’을 준비하고 있는가?'
아니, 이제는 준비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그리고,
저와 동갑인 톰 크루즈의 약간은 노쇠해진 모습을 보며
묘한 위로를 받았던 시간이었습니다. :)
시리즈가 끝났으니, 그도 저처럼 은퇴 생활자가 되는 것인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