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사하는 날,
정확히 156개의 박스가
20피트 컨테이너에 알차게 실리고
이국 노동자의 마디 억센 손 끝에
컨테이너 문짝이 마지막으로 닫힌다.
흔히 말하기를
올 때는 빈손으로 왔다가
떠날 때도 빈손으로 간다고 하는데
어느덧
20피트 컨테이너가 정확히 계량한 나의 소유.
적어도 그 소유의 중량만큼은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다가
문득 옆에 선 내 소중한 가족을 바라보며
이 역시 한없이 민망한 생각이었음을 뉘우친다.
나는,
하늘과 세상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사는 자인가 !
위의 글은 해외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귀임을 하면서 이삿짐을 포장하던 날에 느낀 감정을 표현해 본 것이다.
20피트 컨테이너에 짐을 싣는데 컨테이너 문짝이 겨우 닫힐 정도로 이삿짐이 꽉 찼다.
포장 이사를 할 때 이삿짐 업체의 종업원 중에서 가장 베테랑은 무거운 짐을 나르는 자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이삿짐 박스를 컨테이너에 담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집의 물건을 육안으로 보고 필요한 컨테이너 양을 결정을 하고 물건의 적재 순서를 정해서 최대한 유휴 공간 없이 하나하나 실어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도 대만에서 이 일을 하시는 분이 요령껏 잘하셔서 내심 짐이 오버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모든 짐을 무사히 실을 수 있었다.
짐이 모두 실리고, 내가 살던 9층 아파트에 다시 올라가서 창을 닫으려 하다가 나의 모든 소유물이 온전히 분리수거되어 실려있는 컨테이너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사실 살면서 이삿날이 아니면 우리 소유물을 이렇게 정돈된 형태로 볼 일이 많지는 않을 듯싶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태어날 때는 빈손으로 왔는데 50여 년이 지난 지금 내 소유라고 할 만한 것이 20피트 컨테이너에 꽉 찰 정도로 늘어났다는 것을 육안으로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가진 것에 감사하라는 추상적인 표현이 물리적인 유형의 증거로 설득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빈손으로 태어나서 내게 주어진 것이 어디 이 같은 물건뿐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내와 내 두 아들, 그리고 내 주변의 많은 분들, 지나 온 시간들, 건강의 조건들.... 감사의 범주로 따지자면 내가 소유한 물건에 비유할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 나열되었다.
그런 것 같다, 직장 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통해서 얼마만큼의 돈을 버는 가도 중요하지만 이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것들로 우리 주변이 채워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조차도 겸손의 범주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