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책장에 꽂힌 책들은 고유한 도서분류 기준에 따라 순서에 맞게 정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서분류 번호가 "833.6"이면 일본 현대 소설입니다.
이 영역의 책들은 다시 작가의 이름에 따라 분류되어 비치되는데, 제가 자주 가는 도서관에는 2칸 정도가 무라카미라는 이름을 가진 작가의 책들입니다. 무라카미 하면 당연히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릴 것입니다. 저도 하루키 책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인상적인 제목의 책이 눈에 띄어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_"55세부터 헬로라이프"
이 책의 저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라 "무라카미 류 (村上 龍)"입니다.
일본문학에 문외한이어서 제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는데 일본에서는 하루키 못지않은 명성을 쌓으신 분이라고 하네요.
아무튼, 이 소설이 제 관심을 끈 것은 소설의 소재가 은퇴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다섯 편의 중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섯 명의 주인공들이 각자의 다른 삶의 궤적 가운데 은퇴라는 변곡점을 지나가는 모습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1. 결혼상담소 : 남편과 황혼 이후에 결혼상담소를 통해서 새로운 만남을 시도해 가는 나카고메 스즈코
2.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번 : 출판사에서 정리해고 된 후 노숙자 전락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안고 살아가다가 노숙자인 친구의 마지막 길을 동행해 주는 60살의 인도 시게오
3. 캠핑카 : 조기 퇴직 후 캠핑카로 전국 일주를 꿈꾸지만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는 영업팀장 출신의 토미히로 타로
4. 펫로스(Pet Loss) : 퇴직한 남편과 갈등을 반려견을 향한 관심과 사랑으로 채워보지만 반려견의 죽음이라는 더 큰 이별을 맞이하는 다카마키 요시코
5. 여행도우미 : 이상형의 여성을 만나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의 불씨를 지피는 퇴직 트럭운전기사 시모후사 겐이치
5명의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시대 배경은 대체적으로 암울합니다.
일본 경제의 버블이 꺼지면서 흔히 이야기하는 잃어버린 30년이라는 활기 잃은 시대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이들 소시민이 겪어가는 은퇴 이야기는 더욱 불안하고 우울하고 힘이 듭니다.
하지만 그 삶의 궤적 끝에서 의외로 따스한 작가의 시선을 만나게 됩니다. 다섯 명 모두 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책 제목이 Hello Life인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도 초고령 사회를 맞이하며 준비 안된 은퇴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웃나라 일본의 어딘가에 있을 다섯명의 동년배들 이야기가 낮설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친숙함을 느끼게 합니다
은퇴 세대라면 일독을 권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