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소랜 은퇴 연구소


어제 오후에 아내와 같이 영화 오펜하이머(Oppenheimer)를 보고 왔습니다.

2박 3일 태백 선교봉사를 다녀와서 몸이 많이 피곤하기는 했지만, 이번주 일정을 보니 어제를 빼고는 저희 부부가 같이 시간을 낼 수 있는 때가 없어서 급히 당일 예매를 하고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이쯤 되면 은퇴 생활자의 하루하루가 너무 빡빡한 것 아닌가요...^^

저희들이 오펜하이머를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tvN의 알쓸별잡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직접 출연해서 패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이 영화를 한번 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거장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놀란 감독을 출연시킨 tvN의 섭외력에 놀라기도 했고...

 


 

영화를 보고 느낀 것들은 몇 자 적어봅니다.

 

1)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tvN에 출연한 진짜 이유 

영화를 다 보고 제가 아내에게 건넨 첫마디는...."놀란 감독이 알쓸별잡에 출연한 이유가 tvN의 섭외력이 아니라 영화제작사의 필요성 때문이었군..."

 

제가 이렇게 농담을 건넨 이유는 사실 영화가 좀 지루했습니다. 3시간의 긴 러닝타임이 2개의 청문회 (원자력 위원회에서 진행된 오펜하이머 청문회, 그리고 그와 대립각을 세운 스트로스 제독의 인사청문회)를 큰 줄기로 해서 이전 일들을 회상하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많은 부분이 대화로 구성되다 보니 몰입도가 높지는 못했습니다. 반면에 저보다 진지한 것을 좋아하는 아내는 대체적으로 좋았다는 평가였습니다.

범죄도시류 영화를 선호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관객수가 미션임파셔블7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을 해 봅니다. ^^

그래도 오늘기준으로 전세계 박스오피스를 찾아보니 오펜하이머가 미션임파서블을 압도하고 있네요.

 

 

2) 부러운 천재성

영화를 보다가 개인적으로 가장 부러웠던 장면,,, 오펜하이머가 단 6개월 네덜란드어를 공부하고 그 어려운 양자역학을 네덜란드어로 강의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저희 같은 평범한 사람은 수십 년을 외국어 공부를 해도 부족한데  단 6개월 만에 외국어 한 개를 마스터해 버리죠.... 실제 오펜하이머는 영어 외에도 그리스어·라틴어·프랑스어·독일어·네덜란드어·산스크리트어까지 총 7개 언어를 구사했다고 합니다.

 

강의능력도 뛰어나서 대학에서 양자역학 강의를 개설하고 초기 단 한 명의 수강생으로 시작해서 수강생들이 넘쳐나는 인기강좌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뿐 아니라 사교성이나 친화력도 대단해서 당시 사교계에서 많은 사람을 사귀고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높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천재인 동시에 모태인싸인 셈입니다.

 

 

3) 사과와 선악과

이런 천재 오펜하이머도 캠브리지 대학교 유학시절 극심한 스트레스와 신경쇠약으로 사과에 독을 넣어서 지도교수를 독살하려고 시도합니다.  영화에서는 교수가 이 사과를 먹기 직전에 가로채는 것으로 일단락은 됩니다.

 

이후 영국과 독일에서의 유학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양자역학의 세계적 권위자가 된 오펜하이머는 귀국해서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되고 마침내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하탄 프로젝터의 리더로 임명이 됩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이 원자폭탄이 폭발하게 되면 핵분열의 연쇄반응이 멈추지 않아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수학적으로 계산을 하면 그 가능성은 Near Zero가 나오지만...Near Zero는 Zero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온 인류가 죄인이 된 것처럼, 이 원자폭탄 실험으로 온 인류가 멸망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공포심은 인류가 해보지 않은 일을 처음으로 하게 되는 당시 프로젝트 참가자들에게는 가공할 수준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래서 사과를 선악과에 비유하면서 놀란감독이 사과독살 에피소드를 넣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핵폭탄은 선악과였을까요?

 

다행히 핵실험 결과 우려했던 핵분열의 연쇄작용에 인한 지구가 멸망하는 일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지구상에 수만 대의 핵폭탄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과 핵전쟁으로 인류와 지구가 멸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핵폭탄의 개발의 성공은 인류가 뉴멕시코주 로스알라모스에서 베어먹은 선악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 엔딩 장면

제 개인적으로 영화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가 연못가에서 나누는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물론 이 장면은 이 영화의 대본을 쓴 놀란 감독의 허구입니다. 하지만 놀란 감독이 이 한 장면의 메시지를 위해 3시간 분량의 영화를 연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펜하이머: 알베르트. 그때 그걸 만들고 있을 때 제가 핵분열의 '연쇄 반응'이 끝나지 않아 온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가설을 담은 계산식을 가지고 박사님을 찾아뵌 적이 있었죠. (Albert, when I came to you with those calculations, we thought we might have started a chain reaction that would destroy the entire world?)


아인슈타인: 나도 기억하네. 그 이야기는 왜? (I remember it well. What of it?)


오펜하이머: 우리가 그걸 현실로 만든 것 같아요.(I believe we did.)

 

이 대화에서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실험을 인류가 개발하지 말았어야 할 선악과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맨하탄 프로젝트 성공 이후의 오펜하이머의 행동을 이해하게 하는 출발점입니다.

 

자주 회자되는 그의 말입니다.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이제 나는 죽음,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러닝시간 3시간이 부담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한번 감상해 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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