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소랜 은퇴 연구소


파리에서 동선을 잘 짜고 계획성 있게 여행을 하더라도 긴 기간을 지내다 보면 동선이 겹치게 되고 한 곳을 여러 차례 방문할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생 쉴피스 성당(Église Saint-Sulpice)이었습니다.

이 성당을 처음 방문한 것이 라탱지구를 여행할 때였습니다.

 

[파리 한달살기-8] 라탱 지구에서 만난 파리의 지성, 예술, 그리고 낭만

파리의 심장, 아니 유럽 지성의 요람인 소르본 대학교가 위치한 라탱 지구(Latin Quarter)를 탐방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구글 지도를 펼쳐들었습니다. 오늘의 여행은 철저한 동선 관리가 필요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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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첫 번째 방문에서 유진 들라크로와(Eugène Delacroix)의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과 프랑스와 루우안(François Lemoyne)의 "마리아의 승천 (L'Assomption de la Vierge)"을 감상할 수 있었죠.

그리고 3주 정도 지나고, 여행 일정에 따라 들라크로아 미술관 (Musée National Eugène Delacroix)을 관람하러 갔었는데, 이 미술관은 유료였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적으로 너무 협소했고 자화상 외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도 없더군요. (그의 대표작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등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음.)

 

미술관 내부를 둘러보는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온 것 치고는 소득이 없는 발걸음이어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주변 지역을 좀 거닐었습니다.

소박해 보이는 들라크라와 박물관


그런데 멀리, 나직한 파리의 일관된 스카이라인 위로 눈에 익은 성당의 첨탑이 보였습니다.

바로, 생 쉴피스 성당(Église Saint-Sulpice)이었죠.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두번째 찾은 생 쉴피스 성당

 

첫 번째 방문 때는 좀 늦은 시간에 방문한 데다가 예술의 다리(Pont de l'art)에서의 일몰시간에 맞추느라 성당에서 긴 시간을 머물 수가 없었더랬습니다.  황급히 벽화와 천장화만 보고 나간 탓에 영화 다빈치코드에 나왔던 태양시계_그노몬(Gnomon)과 관련된 구조물들을 찾아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이 부분도 꼼꼼히 챙겨볼 수 있었습니다.

그노몬 원리 (출처 : 위키피디아)

 

 

그노몬(Gnomon)은 1700년대에 부활절 날짜를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태양시계로 기본 원리는 위의 그림과 같습니다.

 

남북을 잇는 자오선 상의 남쪽 벽에 있는 창문에 핀 홀을 뚫어두면 이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태양 빛의 정점은 자오선 상에 투영이 될 것이고, 그 위치는 계절마다 달라질 것입니다.

 

이 투영상은 태양이 가장 높게 뜨는 하지 정오에는 교회 안쪽 바닥에, 그리고 해가 가장 낮게 뜨는 동지 정오에는 성당의 벽면에 떨어질 것인데 그 사이에 오벨리스크를 두어서 오벨리스 상단에 떨어지도록 해 두었습니다.  이런 원리를 통해 일 년을 측정할 수 있고, 태양의 투영상은 하루를 기준으로 보면 자오선을 기준으로 좌우로 움직일 것이므로 정오를 기준으로 앞뒤 시간도 측정할 수 있었을 겁니다.

 

실제 성당의 측면에 작은 오벨리스크가 있고 그 아래에 자오선을 잇는 "로즈라인"이 바닥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 창문에는 핀홀 역할을 하는 작은 구멍(화살표)이 보입니다.

 

(겨울철이 되면 거의 매일 두꺼운 구름층으로 덮혀 선명한 태양을 보기 힘든 파리의 날씨를 고려하면,  과연 이 해시계가 동짓날을 제대로 계측할 수 있었을까하는 현실적인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창문 위의 핀홀 구멍

 

오벨리스크와 로즈라인

 

 

그렇게 관람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출구 쪽에 붙어 있는 공연 안내 팜플릿이 눈에 띄었습니다. 

Paris, cœur de lumières (파리, 빛의 심장)이라는 제목의 공연인데 생 쉴피스 성당 안에서 펼쳐지는 조명과 음향의 스펙터클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까 불어를 몰라도 분위기는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예약을 하고 다음 날 밤 7시에 세 번째로 이 성당을 찾았습니다.

 

공연 안내 유튜브

 

공연은 150명 이상의 배우와 엑스트라들이 등장하는 대작으로, 1648년부터 시작되는 프롱드라는 한 가문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통해 생 쉴피스 성당이 건립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이 공연에서 압권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200여 개의 프로젝터가 동원되었다는 화려하면서 정교한 조명은 한 편의 거대한 일루미네이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성당 내부의 있는 수많은 조형물(창문, 기둥, 조각상...)에 정교하게 Align된 프로젝션 영상은 놀랄만한 장관을 연출해 냈습니다. 화려하고 거대한 성당이라는 인프라가 있기에 구현이 가능한 조형물과 영상의 앙상블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성당 벽면과 천장에 두영된 일루미네이션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연 후반에 등장하는 파이프오르간 연주였습니다.

이 성당의 파이프오르간은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큰 파이프오르간이라고 하는데 , 여기서 흘러나오는 장중한 음악이 화려한 조명쇼와 만나면서 가벼운 악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감동을 전해 줬습니다.

 

이번 파리 한달살기 여행 중에 세 번씩이나 우리를 품에 안아 준 생 쉴피스 성당.....

이 공연의 감동과 함께 오랫동안 우리 부부의 기억에서 공존할 것입니다. 

 

이런 감동과 경험의 공유, 부부가 함께 여행하는 진정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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